Criticisms
2025
기호 권력에 대항하는 회화의 전복적 전략
박정혁은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이미지의 구성 방식과 의미, 그리고 그 효과에 이르기까지 시각 예술의 여러 층위를 촘촘히 탐색해왔다.
그의 회화는 대중매체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재조합하고, 이를 통해 관람자의 익숙한 감각 체계에 균열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영화, 방송, 광고, 잡지 등에서 가져온 시각적 파편들은 새로운 회화적 맥락 안에서 배치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시각의 정치성과 감각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Park’s Park》– 기호와 권력의 구조를 해체하는 이미지 실험
‘Park’s Park’는 박정혁 회화의 출발점이자, 이미지의 기호적 성격과 권력 구조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시리즈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대중매체의 이미지들을 단순 차용하거나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낯설게 재배열하여 이미지가 사회적 욕망과 권력의 매개로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익숙했던 이미지들은 원래의 맥락을 잃고 충돌하거나 병치되며, 이전과 다른 감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전략은 관람자가 ‘당연히 보던 방식’을 흔듦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보도록 훈련되어 왔는지, 그리고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욕망과 인식을 조정해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Park’s Park’는 그 자체로 이미지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시각적 구조에 숨어 있던 이데올로기를 파헤치는 회화적 실험이며, 이후 전개될 박정혁 작업의 핵심적 기반을 형성한다.
《Park’s Memory》– 감각과 기억의 유동성을 드러내는 표면 실험
‘Park’s Memory’ 시리즈에서는 약 포장재로 흔히 사용되는 은색 PET 필름 위에 유화를 올리며, 표면 위에서 번짐·반사·일그러짐이 발생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비전통적 재료는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부유하도록 만들며, 기억의 파편성과 감각의 유동성을 반영한다.
PET 필름은 환경과 빛에 따라 반응하는 표면이기 때문에, 이미지는 한 형태에 머물지 않고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회화를 ‘완결된 이미지’의 개념에서 벗어나 시간성과 감각의 흔들림을 담아내는 열린 사건으로 전환시킨다.
《Park’s Land》– 변신과 존재의 전환을 담는 시각적 서사
‘Park’s Land’ 시리즈에서는 고전 신화와 영화 속 인물들을 재해석한 형상이 화면 안에서 해체되거나 중첩된다. 여기에서 작가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전환, 즉 ‘변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형상은 붕괴되거나 겹쳐지고, 불안정하고 일그러진 표면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존재가 출현한다. 이러한 변형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현대적 조건을 시각화한다. 메타버스, 아바타, 부캐 등 동시대적 정체성 실험과 맞닿아 있으며, 존재의 유동성과 파편화를 회화적 언어로 구현한다.
이처럼 박정혁의 회화는 전통적 형식과 개념의 경계를 넘어, 시각문화와 자본주의, 권력, 욕망, 정체성 사이의 복합적 관계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 동시대적 실천이다.
그는 익숙한 이미지의 맥락을 해체하고 전복함으로써, 관람자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시각적 질서에 균열을 가하며, ‘보는 행위’ 자체를 낯설고 비판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PET 필름의 반사적이고 유동적인 표면, 해체된 형상, 병치된 이미지 조각들은 회화를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닌, 감각적 실험과 기호의 재배치, 존재론적 사유의 장으로 전환시킨다. 그의 회화는 중첩과 붕괴, 반사와 왜곡이라는 시각적 전략을 통해 동시대 사회의 모순과 불안, 감각의 혼성적 조건을 드러낸다.
결국 박정혁의 회화는 넘쳐나는 이미지와 과잉된 시각 정보가 인간의 내면과 감정, 존재의 깊이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이 시대에, 회화가 여전히 인간의 불완전하고 다층적인 감각과 기억, 정체성의 조각들을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매체임을 역설한다.
그의 작업은 감각의 파편성과 시각적 불안정을 통해, 오히려 더 깊고 복합적인 ‘인간적인 것’에 다가서려는 시도로 읽히며, 회화가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갱신하고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